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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성지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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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전주> 은총의 길따라 치명자산 성지순례 ![]() 상품기본정보
일정표
* 치명자산 순례지 소개 * 전주 치명자산 성지의 기념성당 안 벽면은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제대를 바라보며 왼편에는 대나무 숲 사이로 아름다운 자태의 여인이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모습이 모자이크되어 있었다. 이순이 루갈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제대 오른편에 모자이크된 젊디젊은 청년은 유중철 요한의 모습이 있다.
이 두 젊은이는 다블뤼 주교께서 ‘한국 순교사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진주’라고 했던 두 사람이다. 아름답기에 더욱 슬프고, 슬프기에 더욱 순결한 사람들, 천천히 기념성당을 나서는 가슴엔 무어라 형언하기 힘든 벅찬 감동이 갑옷처럼 얹히게 된다. 전라북도 전주시 교총에 자리한 치명자산 성지는 전주8경의 하나인 기린봉 능선의 승암산 자락에 있다. 유함검과 그 일가 일곱 분의 순교자 합장묘소가 있는 이곳은 ‘중바위산’ 혹은 ‘루갈다산’으로도 불린다. 결혼을 했지만 동정으로 살다 순교한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의 아름다 몽마르뜨(mont-martre)천주교 성지 치명자산’이라고 커다란 돌에 새겨놓은 성지 입구를 지나면, 쓰러진 예수님을 껴안은 흰 피에타상을 가운데로 하고 길은 두 갈래로 나뉘다. 왼쪽 길은 십자가의 길이고 오른쪽은 전주교구 성직자 묘역이다. 통나무를 철사로 묶어 계단을 만들고 그 사이를 돌로 메운 계단길은 꺾이고 또 꺾이면서 14처로 이어진다. 길바닥은 거칠지만 이 길은 전주의 여러 본당이 구역을 나누어 가꾸고 있어서 여간 깔끔하지가 않다. 14처가 끝나고 나면 기념성당이 모습을 드러낸다. 절벽에 붙여서 마치 굴을 파듯 세워진 성당 오른쪽 휴식처 앞에는 청매 한 그루가 서 있고, 성당 양쪽에 활처럼 흰 계단이 있어 성당 위로 올라갈 수가 있다. 성당 옥상은 광장이다. 여기서 다시 양쪽으로 둥글게 올라간 계단을 오르면 유향검 일가 일곱 분의 순교자를 모신 합장묘가 웅장하게 떠오른다. 소나무와 바위로 둘러싸인 합장 묘소 앞 상석 위에는 시복시성 기도문이 백합꽃과 함께 놓여 있었다.
묘소 왼편으로 올라가면 전동성당과 함께 전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묘소 위쪽으로는 동정부부 순교자를 기리며 세워진 거대한 십자가가 세월의 비바람을 견디며 서 있다. 초기 천주교 교리 연구를 위한 모임인 주어사 강학회에도 참여했던 아버지 이윤하는 그녀가 12세에 세상을 떠난다. 권철신과 권일신의 누님이 되는 어머니의 깊은 신앙 아래서 자란 그녀는 14세가 되던 1795년 주문모 신부가 입국하자 미사에 참여하면서 첫영성체를 하게 된다. 그녀의 깊은 믿음은 세속의 즐거움을 버리고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사랑하기 위하여 자신의 동정을 바치기로 결심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로서는 양반집 규수가 결혼을 하지 않고 동정을 지킨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이순이의 간곡한 뜻은 결국 주문모 신부에게까지 전해지고, 여기에서 주문모 신부가 떠올린 사람이 전라도의 사도인 유항검의 아들 유중철(요한)이었다. 유항검(아우구스띠노)은 1784년 권일신의 집에서 천주교와 만난 후 이승훈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가성직 제도에 의해 신부의 권한을 위임받고 호남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하지만, 그 후 이 제도가 잘못되었음을 알고, 주문모 신부를 입국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호남의 부호로서 “찹쌀 배미 쉰세 마지기”의 재산가였다. 손님접대와 명절 음식을 차리는 데 쓰이는 찹쌀벼를 심는 논이 쉰세 마지기였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이러한 가세와 높은 덕망으로 많은 사람들과 교우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형식적으로는 결혼한 몸이지만 오누이처럼 살면서 동정을 지킬 것을 약속받고 주문모 신부는 두 사람을 결혼을 허락하게 된다. 1797년 결혼한 이순이는 전주의 초남리에 있는 시집으로 가 4년 동안 동정부부로서 남매같이 살아간다.
1801년 3월 전라도에 신유박해의 피바람이 몰아치며 시아버지 유항검은 전라도 지방에서는 제일 먼저 체포되어 1801년 10월 24일 대역부도죄로 능지처참되었다. 시아버지와 함께 끌려갔던 남편 유중철은 동생 유문철과 함께 그해 11월 14일 목이 잘리며 순교했다.
이순이의 오빠 이경도(가롤로)도 그녀가 순교하기 이틀 전 서울에서 목이 잘려 순교하였고, 동생 이경언(바 이순이의 9세, 6세, 3세의 어린 세 시동생은 각각 거제도, 신지도, 흑산도로 귀양을 가면서 생사불명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유항검 일가에 절멸(絶滅)을 가져온다. 조정에서는 이들을 죽인 후에도 그 흔적을 없애려고 집을 헐고 집터는 깊이 파서 연못을 만들어버리는 조치를 취했다.
전주교구에서 펴낸 유항검 일가에 대한 작은 책자의 제목은 ‘초남리에서 치명자산까지’라고 되어 있다. 한 집안에 믿음의 싹이 솟아나 영생의 꽃으로 피어나기까지의 그 고난과 역경의 도정 양 끝에 초남리와 치명자산이 있는 것이다. 이땅 위의 모든 영광은 재로 변했지만 유항검 일가는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을 통해 하늘의 영생을 얻은 것이다. 지금 이 묘소에는 두 개의 석관이 묻혀 있다. 오른쪽 석관에는 유중철과 이순이의 유해가 그리고 왼쪽 석관에는 다른 다섯 분의 유해가 백자 항아리에 담겨 있으며, 두 석관은 기념성당의 중앙에서 직선으로 뻗어올라간 지점을 중심으로 양쪽에 배치되어 있다. 특별한 은총이 머무는 듯한 치명자산, 이는 정면에서 치켜다보면 영락없는 "게쎄마니"의 예수님 상이요 뒤로 올라가 봤을 땐 온 고을을 굽어보면 축원하는 성모님 상 같은 아주 특별한 천연 기암석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전북 전주시 대성동 산 11-1 에 위치한 전주교구 순교 성지 치명자산 정상의 유항검과 동정부부순교자묘 바로 위에 있는 높이 약 5m의 "큰 바위 얼굴") 이 성지는 교구에서 7년여에 걸쳐 가파른 벼랑에 기념동굴 성당을 짓고(1994년축성) 주임신부가 상주하면서 소위 "꽃동산 성지"로 개발, 각광을 받고 있다. 바위산 비탈을 오르면서 기도하는 "골고타"십자가의 길과 입구에서 산상 성당까지 굽이 굽이 펼쳐진 기도 꽃길은 어느 성지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특별한 절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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