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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곳 완주 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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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1박2일 우리나라 첫번째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발자취를 찾아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탄생부터 순교까지 전체 코스를 순례하는 일정 ![]() 상품기본정보
상품특전►노쇼핑 노옵션 노팁 진행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성지순례에 함께 하는 신자분들의 기도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쾌적하고 깔끔한 숙박 ►맛있는 식사로 성지순례 활동에 에너지를 만들어 드립니다. ►각종 바이러스 걱정없는 차량 소독은 물론 참가하신 신자분들 개별 체온 측정 및 차량내 소독제 비치 ►출발 부터 성지 관련 안내는 물론 차량 운영이 가능한 드라이빙 스루 가이드가 함께하며 편안하게 모십니다. ►소수인원으로 현지 성지 미사에 참여 할 수 있는 경우 성지 미사 함께 합니다.
포함사항► 전일정 전용차량 ► 숙박비 ► 1일차 중,석식 2일차 조,중식 ► 성지순례 일정에 포함된 모든 일정 ►여행자 보험 최대 5천만원 보장 불포함사항►싱글 비용 ►개인 간식 및 음료 주류 포함외 식사 및 입장료 ►미사 봉헌시 봉헌비 및 예물 ►여정 변경으로 인한 이동 차량비 쇼핑센터노쇼핑 일정표
새남터 순교성지 : 최초의 선교사가 목을 떨군 곳 한양성 밖 남쪽 한강변에 있던 새남터는 본래 노들 혹은 한자로 음역(音譯)해서 사남기(沙南基)라고 불리던 곳으로,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으로 사용됐고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1801년부터 1866년까지 무려 10명의 프랑스인 사제와 김대건 신부를 포함한 11명의 목자가 이곳에서 거룩한 순교의 피를 흘렸습니다. 서소문 밖 네거리를 ‘평신도들의 순교지’라고 한다면 이곳은 ‘사제들의 순교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솔뫼성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 솔뫼는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로서, 성인이 박해를 피해 용인 땅 골배마실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진 ‘솔뫼’는 김해 김씨 안경공파인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종한(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1846년 순교) 신부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 복음이 전래된 것은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가 그의 고향인 충청도 지방의 전교를 맡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가 면천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는 이존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곧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였고, 그로부터 이곳 솔뫼는 교우촌이 되었습니다. 나바위 성지 : 성 김대건 신부가 첫발을 내디딘 축복의 땅 나바위는 한국의 첫 방인사제인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조국에 입국하며 첫발을 내디딘 축복의 땅입니다.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사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는 그 해 8월 31일 11명의 교우들과 함께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를 모시고 작은 목선 라파엘호를 타고 귀국길에 올라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긴 끝에 10월 12일 강경에서 조금 떨어진 황산포 나바위 화산 언저리에 닻을 내렸습니다. 골배마실 성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곳 김대건의 본관은 김해이고, 증조부는 김진후(金震厚, 비오, 1739-1814)이며, 조부는 김택현(金澤鉉)입니다. 부친은 김제준(金濟俊, 이냐시오, 1796-1839년) 성인이며 모친은 고 우르술라로 선대 때부터 여러 대에 걸쳐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여 충청도 솔뫼에서 살아왔습니다. 김대건은 1821년에 탄생하였고 아명(兒名)은 재복(再福)이며, 보명(譜名)은 지식(芝植)으로 관명(冠名)은 대건(大建)입니다. 김대건의 가문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은 증조부 김진후였습니다. 그는 1791년(신해박해)에 체포되어 1801년(신유박해) 때에 유배되었다가 1805년 다시 잡혀 충청도 해미에서 10년간의 옥중 생활을 하던 중 1814년에 순교하였습니다. 김대건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였던 ‘골배마실’이라는 지명은 배마실이라는 동네 이름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즉 배마실(현 양지성당 소재지)은 옛날부터 첩첩산중인데다 뱀과 전갈이 많이 나오는 지역이라서 뱀마을, 즉 ‘배마실’이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리고 김대건의 가족이 거주하던 집은 배마실까지 이어지는 골짜기 안에 있어 ‘골배마실’이라고 붙여졌습니다. 소년 김대건이 세례성사를 받게 된 때는 한국에 프랑스 선교사로서 처음 입국한 나 모방 신부로부터 15세 되던 해인 1836년 은이 공소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소년 김대건은 세례는 받지 않았어도 곧바로 신학생 후보로 선발이 된 사실로 미루어 보아 가정에서 이미 교리 공부와 기도 생활은 착실히 배워 실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1816년 이후 시작된 평신도 지도자들의 꾸준한 성직자 영입 운동이(매년 중국교회를 방문했던 시기) 무르익어 결실을 앞두고 있던 때였기에 소년 김대건은 성직자에게 직접 세례 성사를 받고자 하는 뜻을 갖고 기다렸음이 확실했습니다. 이처럼 골배마실 성지는 김대건의 소년 시절의 향취가 남아 있는 곳이요, 성소의 꿈을 키우던 장소입니다. 조선 땅에 이제 곧 오실 신부님을 기다리며 기도하고, 교리를 익히고, 조선 교회의 미래를 위해 한 몸을 바치고자 하는 포부를 가슴에 담고 살았던 장소이고, 세례성사와 첫 영성체를 준비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간직하고 생활했던 곳입니다. 골배마실은 옛날부터 양지 교우(신자)들 사이에 김대건 신부의 가족들이 살던 집터로 구전되어 왔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을 발굴하게 된 때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골배마실 성지는 1961년 양지 본당 5대 주임이었던 정원진 루카 신부에 의해 발굴이 시작되어 돌절구와 갖가지 생활 도구, 즉 맷돌, 우물터, 구들장 등을 발견하면서 성지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97년에는 40년 가까이 옛 모습 그대로 있던 성지를 새롭게 단장하게 되었는데, 새로이 청동으로 제작된 2미터짜리 성상을 모셔 7월 5일 대축일을 맞아 축성하였고 처음 골배마실 성지에 모셔졌던 성 김대건 신부 성상은 양지 성당 정원에 모셔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은이성지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첫 사목지 은이 마을은 한국인 최초로 사제가 된 성 김대건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에서 불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으로 1836년 15세의 소년 김대건이 모방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고 최양업, 최방제와 함께 신학생으로 선택되어 마카오로 파견된 곳입니다. 또 1845년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가 바로 은이 공소였습니다. 성 김대건 신부가 성소의 씨앗을 뿌렸던 곳이자 그 열매가 가장 먼저 열렸던 곳이 바로 은이 마을, 은이 공소입니다. 그리고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모방 신부의 사목 활동의 중심지 또한 은이 공소였습니다. 미리내성지 성 김대건 신부의 시신이 안장되었던 미리내 성지는 본래 박해 시대에 형성된 교우촌으로 1883년 공소가 설립되었다가 1896년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초대 주임으로 부임한 강도영 신부와 신자들에 의해 1907년 초 성 요셉 성당이 건립되었습니다. 1976년 성직자 묘지 상단에 수원교구 도처에 묻힌 무명 순교자 17위의 유해를 이장해 모셨는데, 그 중 이동면 묵리에서 이장해 모신 유해가 병인박해 때 순교한 이윤일 요한 성인으로 밝혀져 1986년 대구대교구로 천묘했습니다. 16위의 유해 중 서봉부락 돌무덤 순교자 4위가 2013년 손골 성지로 이장되어 현재는 12위의 무명 순교자 유해가 합장되어 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시복에 맞춰 1928년 봉헌된 '한국 순교자 79위 시복 기념경당'에는 성인의 유해 일부가 모셔져 있고, 경당 앞에는 왼쪽부터 강도영 신부, 김대건 신부, 페레올 주교, 최문식 신부의 묘가 나란히 있습니다. 경당 밖 왼편에는 김대건 신부의 어머니인 고 우르술라와 목숨을 걸고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빼내어 자신의 고향인 미리내에 모시고 밤낮으로 돌본 이민식이 나란히 누워 있습니다. 여행전체크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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