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의 의미 소그룹 맞춤순례 20인 이상 순례 167곳 완주 순례 자유 순례 일반여행

소그룹 맞춤순례

대전,청주교구 → 1박2일

한국 천주교 순교역사의 길목 대전교구 1박2일

대전교구 내포지역의 신앙 발자취를 찾아가는 1박2일 성지순례

상품기본정보

여행도시 교구별 거룩한 땅을 향하여 - 대전,청주교구 - 1박2일
여행기간 2일
교통편

4인 ~ 8인 전용 차량

출발일 상시출발

도착일 상시도착

호텔/객실 2인 ~4인 1실 호텔 or 리조트 or 동급
미팅장소 1주일전 확정하여 연락드립니다
대표요금 성인 ₩ 295,000 ~
소아 ₩ 285,000 ~
모객현황

상품가격

요금구분 가격 예약
2인 ~4인 기준 금액 숙소 확정에 따라 변동됨 0 예약하기

상품특전

►노쇼핑 노옵션 노팁으로 진행합니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지순례에 함께해 주세요.

►쾌적하고 깔끔한 숙박

►깔끔하고 정갈한 식사로 성지순례 활동에 에너지를 만들어 드립니다.

►각종 바이러스 걱정 없는 차량 소독은 물론 참가하신 신자분들 개별 체온 측정 및 차량내 소독제 비치

►출발 부터 성지 관련 안내는 물론 차량 운영이 가능한 드라이브 스루 가이드가 함께하며 편안하게 모십니다.

►소수인원으로 현지 성지 미사에 참여 할 수 있는 경우에만 성지 미사 함께 합니다.

포인트

►출발지는 함께 하는 신자분들의 각 위치를 고려하여 서울 경기 권역 내에서 적절한 위치로 확정 합니다.

►차량내 좌석은 먼저 신청하신 분 부터 본사에서 임의로 배정하오니 양해 바랍니다.

►개인 안전을 위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 주시고 개인 건강상태에 대해 성지순례 참여 전 꼭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포함사항

 

► 전일정 전용차량

► 숙박비

► 1일차 (중,석식) 2일차 (조,중 )

► 성지순례 일정에 포함된 모든 일정

►여행자 보험 최대 5천만원 보장

.

불포함사항

►싱글 비용

►개인 간식 및 음료,물, 주류 포함외 식사 및 입장료

►미사 봉헌시 봉헌비 및 예물

특이사항

►차량내 좌석은 본사에서 먼저 신청하신 분 부터 차례로 임의 배정 합니다.( 개인별 권한이 없습니다.)

►숙박 룸메이트의 경우 정해서 오신 분들은 맞추어 배정해 드리나 동행이 없으신분은 임의로 배정해 드립니다.

►다른 신자분들의 안전하고 쾌적한 성지순례 진행을 위해 진행자 요청에 적극 협조해 주시고, 특히 출발전 반드시

건강 상태를 체크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 사정으로 순례 참가 취소가 필요한 경우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상담 가능하며, 주말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상담이 불가 하오니 이점 참고 바랍니다.

►현재 소그룹 패키지 상품으로 4-8분 참가 기준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독 희망시 별도 문의 주시기 바랍니다.

쇼핑센터

NO쇼핑

일정표

성거산성지

성거산 성지는 한국의 성지 중에서 차령산맥 해발 50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보기 드문 곳입니다. 성거산 주변에는 박해 당시 신앙의 선조들과 순교자들이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삶의 터전(교우촌)7개가 산재되어 있어 선조들의 신앙의 향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1860년대부터 1920년 사이에 세워진 교우촌으로 서덕골, 먹방이, 소학동, 사리목, 매일골, 석천리, 도촌 등이 있었습니다. 특히 소학골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칼레 신부와 페롱 신부가 은거했던 곳이고, 박해가 끝난 뒤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거처하거나 순방하던 곳입니다.

 

또한 병인박해 때 10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입니다. 그 중 5명은 공주 감영에서 참수형을 당했고, 5명은 서울 포도청에서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공주 감영에서 참수된 최천여 베드로, 최종여 라자로, 배문호 베드로, 고 요셉, 채 서방 며느리는 성거산 성지 제1줄무덤에 안치되었습니다. 성지 전체로는 제1줄무덤에 38, 2줄무덤에 36기의 묘봉이 있는데, 시신(屍身)들이 겹쳐 있어 실제 안장된 순교자는 훨씬 많다고 합니다. 1959년 미군의 공군기지가 성거산 정상에 주둔하면서 도로를 개설할 때 도로 상의 묘봉 수가 107기였다고 하니, 이곳은 내포지방에 살다가 천주교 신자라는 이유로 순교를 당한 수많은 무명 순교자들의 안식처입니다. 성거산 성지는 200812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175호로 등록되었고, 20115월 성거산 아래 성지 초입에 성당과 수산나 피정의 집이 완공되어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공세리성당

바다가 육지로 깊숙이 들어온 아산만에 인접한 공세리 성당은 일찍이 조선 시대 조세(租稅)를 쌓아 두던 공세 창고가 있던 곳입니다. 이 창고 건물은 1523(중종 18)에 개설됐다가 고종 때 폐지됨으로써, 80칸짜리 건물이 헐리고 그 자리에 1897년 구 성당 및 사제관 건물이 들어섰습니다. 공세리 본당의 오늘이 있기까지 초대 주임과 3대 주임을 지냈던 드비즈 신부의 열정적인 사목 활동이 그 바탕을 이루었습니다. 드비즈 신부는 1930년까지 34년간 공세리 본당을 사목하면서 크고 화려함으로 건축 당시 아산 지방의 명물이 된 현재의 성당 건물도 직접 설계하고 중국인 기술자들을 불러 지휘 감독하여 1922년도에 완공하였습니다.

 

성당 한 편에는 신유박해(1801)부터 병인박해(1866)까지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 순교자 32위를 모신 납골식 순교자 현양탑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현양탑이 세워진 곳에는 원래 1867년 정묘년에 순교한 박의서(사바스), 박원서(마르코) 그리고 박익서(본명 미상) 3형제가 나란히 잠들었던 묘소가 있던 곳입니다.

 

공세리 성지 · 성당은 1995년 본당 설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본당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였고, 1998년 성당과 옛 사제관이 충청남도 기념물 제144호로 지정되었습니다. 2000년 성당과 옛 사제관의 원형 복원공사와 사제관, 수녀원, 예수마음 피정의 집, 성체조배실, 주변 정비 사업을 시작해 20021013일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20078월에는 3형제 순교자 묘가 있던 곳에 순교자 현양탑을 세워 아산 공세리 지역 출신 28위 순교자의 유해와 묘석을 봉안하고 그 위에 도자기 테라코타 부조작품 ‘28위 순교자를 설치하였습니다. 그 후 추가로 발굴된 4위 순교자의 유해 또한 이곳에 모셨습니다. 20089월에는 옛 사제관을 개보수하여 박물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남방제

남방제 성지는 충남 아산시 신창면에 자리 잡고 있는 박해 시대의 교우촌 자리이다.

남방제 성지는 그저 교우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 아니라, 이곳에 살았던 수많은 가톨릭 신앙인들이 죽음으로 자신들의 믿음을 지켜낸 곳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 가운데 성인의 반열에 오른 분은 한 분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신앙인이 태어나고 양육되어 영광된 순교의 관까지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분명하다. 이곳에서 순교하지 않았지만, 병인박해(1866) 당시 순교한 성 조화서 베드로는 이곳에서 성가정을 이루고 아들 성 조윤호 요셉을 키웠다. 또한 교우촌 안에서 함께한 교우들의 도움으로 최양업 신부의 사목을 돕는 데 최선을 다하였다.

성 조화서 베드로는 1815년 수원 도마지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1839년 기해박해 때 아버지 조 안드레아가 순교하자 홀어머니를 모시고 신창 땅으로 이사하였다. 신창 남방제에서 한 막달레나와 결혼하였고, 1848년 아들 조윤호 요셉을 낳았다. 하지만 아들 조윤호 요셉을 낳고 한 막달레나가 죽었고, 홀아비로 있다가 다시 김 수산나와 재혼하였다. 그의 성격은 쾌활하면서도 겸손하고 양순했으며, 신자의 본분을 충실하게 지켜 신자다운 몸가짐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에서 성 조 베드로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복사 겸 마부로 선교 활동을 도와 전국의 신자촌으로 모시고 다녔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최양업 신부가 포졸들에게 잡혀 갇혔다가 가까스로 빠져나와 경상도 남부 지방의 사목 방문을 마친 다음, ‘베르뇌 주교’(한국이름 장경일)에게 성무 집행 결과를 보고하고자 길을 나섰다. 그 길에 최양업 신부가 과로에 장티푸스까지 겹친 아주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고, 성 조 베드로가 푸르티에 신부에게 이를 알려 병자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원뿔 모양의 순교자 신앙비. 맨 위에 성 조화서 베드로와 성 조윤호 요셉상이 소나무 좌우에 세워져 있다.

최양업 신부의 선종 후 1864년 성 조 베드로는 가족들을 이끌고 전주 소양면 성지동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조용하고 착실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1866125일 저녁 갑자기 들이닥친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옥에 갇힌 성 조 베드로는 갇혀 있던 다른 신자들을 격려하며 평온한 마음으로 순교에 임하도록 준비시켰다고 한다. 전라 감사는 성 조 베드로를 회유하기 위하여 온갖 협박과 함께 배교를 강요하였지만 내 비록 이 세상에서는 죽어 없어지더라도 죽은 뒤 내 곧 새 세상에 가서 살게 될 것이요.”라고 응수하여 더욱 잔인한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성 조화서 베드로는 18661213일 전주 숲정이에서 세찬 칼을 세 번 받고 장엄하게 순교하였다.

 

여사울성지

여사울 순교사적지는 조선시대에 충청도 서북 지역을 지칭하는 내포 지역의 사도인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의 생가 터가 있는 곳입니다. 상당한 경제력을 지닌 양인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이존창은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워 입교한 후 고향인 충청도 지방 복음선교에 매진할 뿐만 아니라, 가성직제도의 어긋남을 깨달은 뒤 주문모 신부를 영입하는 데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 때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배교를 하기도 했지만 그 뒤 홍산으로 이사한 후 지난 날의 잘못을 뉘우치며 더욱 열심히 신앙을 지키고 전교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내포 지방은 그 어느 곳보다 교세가 커졌고 또 수많은 순교자를 배출했습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다시 체포된 이존창은 공주 황새바위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습니다. 이렇듯 여사울은 초기 내포 천주교회의 출발지이자 중심지로서 대전교구의 뿌리가 된 곳입니다.

 

내포 지역과 여사울 순교사적지의 중요성을 인식한 대전교구는 교구의 뿌리인 여사울 성지를 개발하기 위해 2002년부터 신례원 성당을 중심으로 성지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주변 부지를 매입하고 진입도로를 넓히는 한편 십자가의 길과 강당을 추가로 조성하였습니다. 20081월 성지본당으로 지정하고, 그 해 12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177호로 등록되면서부터 성역화를 본격 추진하여 생가 터 앞 강당 자리에 이존창 루도비코 곤자가 순교자 기념성당을 신축하고, 기존의 공소 건물 뒤에는 사제관과 수녀원을 건립하였습니다. 스페인풍의 기와를 얹은 순교자 기념성당은 20101016일 봉헌식을 가졌습니다.

 

합덕성당

합덕 성당은 충청도 지역 교회의 중심인 내포 지방 한가운데 자리한 유서 깊은 성당으로 1890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 설립된 양촌 성당을 모태로 합니다. 1899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면서 합덕 본당으로, 1961년 신합덕 본당을 분가하면서 구합덕 본당으로, 1997년 다시 본래의 이름인 합덕 본당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두 개의 첨탑을 지닌 붉은 벽돌 건물인 합덕 성당은 사방 어디서든 그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선조들의 순교정신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또한 성당 구내에는 6.25 때 인민군에게 체포되어 순교한 페랭 백문필 신부와 그와 함께 잡혀가 순교한 윤복수 라이문도 총회장과 송상원 요한 복사의 순교비와 가묘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합덕 성당은 1998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고, 2008년에는 성당 구내에 당진시와 함께 합덕 유스호스텔을 건립하여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신앙인들에게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합덕 유스호스텔은 인근 성지와 연계한 도보순례길 등을 통해 순교신심을 고양하는 거점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인근의 역사 유적과 문화 관광지를 탐방하는 가족 나들이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201012월 본당 설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성당 입구에 합덕 성당 기념비를 세웠고, 2015년 구 사제관 복원공사를 마무리하여 성당 역사관으로 개관했습니다.

 

원머리 성지

신평 성당의 관할 구역인 원머리(당진시 신평면 한정리)는 성당에서 북쪽으로 약 3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이미 상당히 큰 교우촌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원머리라는 지명은 바닷가 원을 막는 머리 부분이라는 뜻을 지닌 언두리가 원머리로 변형된 것으로 박해를 피해온 교우들이 염판과 옹기그릇을 구우며 살던 교우촌이었습니다. 이곳에도 박해의 광풍이 몰아쳐 1866년부터 1868년까지 3년여에 걸친 박해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하게 되는데, 원머리에 유해가 안장되어 있는 박선진 마르코와 박태진 마티아는 무진년(1868)에 수원 감옥에서 순교했습니다.

 

사촌지간인 두 형제의 순교 후 그들의 시신은 외교인 서덕행에 의해 고향 원머리의 박씨 집안 땅에 안장되었다가 198944일 신평 성당 구내로 옮겨 모시며 현양비를 세웠습니다. 신평 성당은 2000년 새 성당을 건축하면서 두 순교자의 묘를 재정비하였고, 2009113일 순교자 현양과 성지 개발을 위해 본래 두 순교자가 묻혔던 원머리 순교사적지 묘역으로 유해를 다시 이장했습니다. 그리고 현양비도 수정하여 다시 세우고 묘역 또한 재정비했습니다. 아울러 20여 년간 두 순교자가 모셔져 있던 신평 성당 자리에 기념비를 세워 두 순교자의 믿음을 기리고 있습니다. 두 순교자는 현재 한국교회에서 진행 중인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시복 추진 대상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솔뫼성지

솔뫼는 한국 최초의 사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탄생지로서, 성인이 박해를 피해 용인 땅 골배마실로 이사 갈 때인 일곱 살까지 살았던 곳입니다.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동산이라는 뜻을 가진 솔뫼는 김해 김씨 안경공파인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 김진후(1814년 순교), 종조부 김종한(1816년 순교), 부친 김제준(1839년 순교) 그리고 김대건(1846년 순교) 신부 등 4대의 순교자가 살던 곳입니다. 이 작은 마을에 복음이 전래된 것은 내포의 사도로 불리는 이존창 루도비코가 그의 고향인 충청도 지방의 전교를 맡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증조부인 김진후가 면천 군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그는 이존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듣고 곧 벼슬을 버리고 신앙생활에 전념하였고, 그로부터 이곳 솔뫼는 교우촌이 되었습니다.

 

1906년 합덕 성당 주임 크렘프 신부는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해 인근의 토지 매입을 시작하였고, 1946년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앞두고 백 필립보 신부는 복자 김대건 신부 100주년 순교 기념비를 세우고 생가 터를 매입하였습니다. 그 후 대전교구는 1976년부터 성지 개발을 본격화해 이듬해 3미터 높이의 김대건 신부 동상과 기념탑을 건립했습니다. 이어 1983년에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 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습니다.

 

또한 19987월 충청남도 기념물 제146호로 지정된 김대건 신부의 생가 터에 지자체와 함께 20049월 생가를 복원하였고, 20063월에는 성 김대건 신부 기념관 축복식을 갖고 성인의 성덕과 순교 정신을 기리고 본받기 위한 장을 마련하였습니다. 2009년부터 주차장 공사를 시작으로 솔뫼 성지는 다시 한 번 대대적인 정비에 들어가 성지의 위상에 걸맞게 야외무대와 광장을 조성하고 성지를 집회와 순례, 기념 공간으로 나누어 순례자들이 성지 순례의 참 의미를 묵상하도록 단장했습니다. 노후화된 솔뫼 피정의 집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1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 공연장이자 문화공간인 솔뫼 아레나를 건립해 20115월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2014815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곳을 방문해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한 청년들과 만남을 가졌고, 2014925일에는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이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52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황무실 성지

황무실은 당진시와 예산군의 경계에 위치한 얕은 구릉 지대에 있는 유서 깊은 교우촌으로, 1791년 신해박해 이전부터 1868년 무진박해까지 신앙공동체가 존속했던 곳입니다. 또한 신리 교우촌과 더불어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 거주하며 사목활동을 한 내포교회의 중심지입니다. 그러나 병인박해로 철저히 교우촌이 파괴되고, 이웃한 면천 출신과 합쳐 70여 명에 이르는 순교자가 탄생했지만, 서서히 역사 속에 묻혔습니다.

 

그러던 중 신합덕 성당 신자들이 황무실에서 사목하다 선종한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의 묘소를 찾아 솔뫼 성지처럼 황무실을 선조들의 고향으로 생각해 자주 순례하며 선교사제와 교우들의 묘지를 보살폈습니다. 1970430일 메스트르 신부와 랑드르 신부의 묘를 합덕 성당으로 이장하면서 황무실은 교우들의 관심에서 다시 멀어지고 돌보지 않는 순교사적지가 되었습니다.

 

황무실은 2014816일 이곳 출신 이보현 프란치스코 순교자의 시복을 계기로 성지로 조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신합덕 본당은 해미에서 순교한 이보현 프란치스코가 살았던 옛 황무실 교우촌 부지를 매입해 순교자 현양비를 세우고 성지 개발을 본격화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황무실 성지 및 순교자 현양비 축복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신리성지

신리 성지는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생가이자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인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가 머물며 내포지방의 선교활동을 지휘하던 주교관이자 교구청으로 사용된 초가집이 복원되어 있는 유서 깊은 사적지입니다. 이곳에서 다블뤼 주교는 초기 순교자들의 행적과 교회사를 정리하여 비망기”(備忘記)를 작성해 파리로 보냄으로써 한국 교회사의 귀중한 사료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각종 교회서적을 집필하고 출판함으로써 근대적 출판 인쇄를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다블뤼 주교는 동료 선교사와 함께 주교관 인근 거더리에서 체포되어 갖은 고문 끝에 보령 갈매못에서 성 금요일에 순교하였습니다.

 

이토록 유서 깊은 신리 순교사적지는 2002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수녀들이 파견되면서 그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대전교구는 2003년 말 다블뤼 주교가 쓰던 옛 주교관을 교회사적 고증을 거쳐 본래의 초가집으로 복원하고, 2004년 성역화를 본격화하면서 기념성당의 첫 삽을 뜨고 부지매입과 진입로 확장, 편의시설 확충 등을 거쳐 2006562년 가까운 공사 끝에 완공한 성 다블뤼 안토니오 · 성 손자선 토마스 기념성당 및 사제관과 복원된 주교관에 대한 축복식을 가졌습니다. 200812월에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76호로 등록되었고, 2009년 기념성당 외벽에 순교자들의 부활을 주제로 대형 부조상을 설치하고 다음해 7월말 야외성당(다블뤼 광장) 공사를 마무리하였습니다. 201456일에는 다블뤼 주교 시성 30주년을 기념해 신리 성지 내에 새로 건립한 성 다블뤼 기념관과 순교자 기념공원 봉헌식을 가졌고, 20173월 기념관 지하 2층에 신리 교우촌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성직자와 순교자들의 행적을 그린 순교 기록화 등을 전시한 국내 유일의 순교미술관을 개관하였습니다.

 

배나드리성지

배나드리 순교사적지는 예산군 삽교읍 북쪽 용동 3리 삽교천 가에 섬처럼 생긴 마을로 도리(島里)라고도 부르며, 홍수가 나면 사면이 물바다가 되어 배를 타고 건너 다녔으므로 배나드리라 하였습니다. 이곳은 삽교에서 아주 가까운 곳(1.3km)이지만 삽교천으로 인해 물이 불어나면 배를 타고서야 드나들 수 있는 곳이었으므로 비밀리 신앙을 지키기에 적당한 마을이었으리라 추정할 수 있습니다. 1817년 이곳에도 박해의 손길이 뻗쳐 해미의 포졸들이 나타나 신자들을 모두 체포해 갔고, 민 첨지 베드로와 형수 안나, 송 첨지 요셉, 손연욱 요셉, 민숙간 등이 혹독한 형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지키다가 옥사로 순교하였습니다.

 

대흥봉수산순교성지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에는 예로부터 의좋은 형제가 살았던 곳으로 유명한 마을이 있다. 밤에 몰래 서로의 논에 볏단을 건네줬다는 우애 깊은 이성만 · 이순 형제의 이야기가 담긴 의좋은형제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또 다른 의좋은 형제를 만날 수 있는 성지가 나온다. 바로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나누던 의좋은 순교자’,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 형제를 현양하는 대전교구 대흥봉수산 순교성지이다.

 

성지에 들어서면 넓은 잔디 광장 가운데 두 팔 벌린 성모상이 순례자를 반겨 맞이하고 있다. 성모상이 세워진 받침대는 사형을 집행했던 참수대(斬首臺)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 뒤로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인상적인 목조건물이 있다. 기와지붕에 나무와 흙벽으로 이루어진 익숙한 건물이지만, 가까이 가면 일반적인 가옥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문마다 창호 없는 창이 뚫려있고, 지붕 바로 아래 달린 작은 창에는 창살이 쳐있는 옥사(獄舍)이다. 성지 바로 옆에 대흥 동헌이 자리하고 있는데, 바로 대흥 관아의 옥사인 대흥 형옥원(刑獄圓)을 재현한 것이다. 형옥원은 죄인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고신(拷訊)과 형벌을 가하던 곳을 이르는 말이다. 옥사에는 3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는 죄인들이 목에 차는 칼과 곤장을 칠 때 사용했을 형구들이 놓여 있다. 순교자들은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수개월 동안 모진 형벌과 고통을 참아내며 이 작은 공간에서 지내야 했다.

 

본래 대흥 관아의 옥사는 상중리 296번지 일원 옥담거리에 있었다. 또 사형을 집행하던 처형장은 예당호 내천변에 있었고, 조리돌림 등의 고신이 행해지던 저잣거리는 동서리 173번지 인근에 있었다. 김정신 스테파노(단국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한 형옥원은 이들을 재현 · 기념하는 공간이다. 형옥원 앞마당은 십자 형태의 거리 모습으로 조성되어 조리돌림, 팔주리 등의 고신과 주리틀기와 큰칼 등의 형벌, 그리고 사형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 그림과 설명문들이 준비되어 있다. 형옥원 바로 앞에는 형벌을 집행하던 의자와 곤장대도 놓여 있다.

여행전체크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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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권 기간만료일이 6개월 미만이거나, 이미 만료된 여권은 기간연장 또는 재발급 하셔야합니다.






특별약관은 신혼여행상품에 한정하며 허니문특수성 및 항공좌석과, 호텔에 대한 선납금으로 인하여 일반약관에 우선하여 효력이 발생하며 별도의 취소료가 적용됨을 양지해 주시기 바랍니다.
허니문 예약 발생효력 시기는 계약금입금과 동시에 성립하며 상품예약후 취소를 할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계약금 환불규정 및 여행상품 판매가 기준으로 취소료가 발생합니다.

제1조. 계약금 환불규정
- 신혼여행 계약후 7일이내 취소시 계약금 전액 환불되며, 7일 이후 취소시에는 계약금 전액
환불되지 않습니다.
(단, 환불전액 및 일부 불가라고 사전공지된 항공좌석과, 호텔에 대한 선납금은 날짜와 관계없이
입금과 동시에 전액 환불되지 않습니다.)

제2조. 리조트 취소 위약금 규정(선입금 및 계약금 별도)
- 출발일기준 30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1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29 ~ 21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2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20 ~ 15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3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13 ~ 2일전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50% 취소위약금 배상
- 출발일기준 1 ~ 당일 취소시 상품판매가의 100% 취소 위약금
- 단 풀빌라 및 특수지역의 리조트는 위 규정과 상관없이 화이날통보(여행 진행의 최종확인)한
날부터 취소 위약금이 발생되며, 전체 리조트 요금에 100% 취소 위약금 배상




- 국제유가와 항공사의 영업환경을 고려한 국토교통부의 국제선 항공요금과 유류할증료
확대방안에 따라 예고 없이 인상되거나, 인하된 금액이 반영될 수 있습니다.




- 당사의 모든 기획 상품은 여행자 보험에 가입됩니다.
(만 1세 이상 ~ 만 89세 미만의 경우만 해당됩니다.)
일반 상해 - 최대 300만원, 질병 - 최대 100만원, 휴대품 도난 및 파손 - 최대 30만원 등
- 상세내용은 약관을 참조해주시기 바랍니다.
(1억 여행자 보험 가입)




- 출발 전 설명회는 출발 3 ~ 7일전에 진행됩니다.
- 설명회는 전화 또는 메일로 진행됩니다.
- 설명회 시 공항 미팅여부, 시간, 장소 그리고 출국편명을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가방은 여행기간에 맞춰 크기를 선별하여 준비하시고, 보조가방(쌕, 크로스백)을 따로 준비하시면
좋습니다.
- 의류와 속옷, 양말 등은 여행지의 기후, 일정에 맞춰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더운 지방의 경우 수영복, 물안경, 선글라스, 모자, 선크림, 파라솔 등을 준비하시고, 냉방시설을
감안하여 긴팔남방을 준비하셔야 됩니다.
- 칫솔, 치약, 면도기, 샴푸, 린스, 화장품, 여행용화장지등 개인위생용품은 따로
준비하셔야 합니다.
- 디지털 카메라인 경우는 메모리카드 및 예비 바테리를 여행일정에 맞게 준비하시고
충전기도 잊지마시고 준비하십시요.
*여행지역에따라 전압 콘센트 또는 어댑터가 틀릴 수 있으므로 여행사에 꼭 문의 바랍니다.
- 카메라(필름사용)소지하신분들은 출발전에 여분의 필름을 충분히 준비하시고 또한
건전지는 넉넉하게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 수첩과 필기구, 회화집 등도 준비하시면 편리합니다.
- 개인취향에 맞게 컵라면, 김 등 밑반찬을 준비하시고, 구급상비약도 챙기시기 바랍니다.

* 기내휴대품 반입 금지 품목은 미리 붙이는 가방(수화물 또는 위탁수화물)
예) - 건전지, 면도기, 손톱 깎기, 칼 등은 기내용 가방에 넣을 수 없으므로 붙이는 가방에 넣어주세요.

- 100ml를 초과하는 액체, 분무, 겔류 등도 붙이는 가방에 넣어주세요.

* 라이터는 붙이는 가방에 넣을 수 없으므로 휴대가방에 1인 1개만 허용됩니다.






- 2007년 3월 1일부터 국제선을 이용하시는 모든 승객들은 100ml가 초과하는 액체, 분무, 겔류의
기내 휴대 반입이 제한되었습니다.
- 100ml이하의 등 물품은 별도의 정해진 팩(일명 지퍼백)에 넣어 반입하셔야 되며, 100ml를 초과
하는 물품은 반드시 붙이는 가방에 넣으시기 바랍니다.

- 국토교통부는 국민여행편의 제고와 동시에 항공보안 강화를 위해 2014년1월1일부터
[항공기내 반입금지 물품]을 변경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국토교통부 [항공기 반입금지 물품]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관련 홈페이지: http://www.molit.go.kr/doc/apdg/guide1.jsp#

- 위의 사항으로 출국수속시간이 지연될 수 있으므로 정해진 미팅시간을 준수하여주시기 바랍니다.





- 유명 관광지 및 기차역 주변, 기타 사람이 많이 밀집된 곳에서는 소매치기 또는 분실사고가
빈번히 발생하므로 특별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 여행 중 도난에 의한 물건 분실의 경우 반드시 현지 경찰서의 경위서(Police report)를 받아오셔야
보험적용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본인 실수에 의한 분실은 보험 처리되지 않습니다.)

[여행경보단계안내]

외교통상부에서는 해외여행, 체류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국가와 지역에 경보를 지정하여 위험수준과 이에 따른 안전대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남색경보(여행유의 일부)/황색경보(여행자제 일부)/적색경보(철수권고 일부)/흑색경보(여행금지) 4단계로 구분하여 지속적으로 변경되고 있으니 출국 전 꼭 확인을 부탁드리며,
해외여행 등록제를 이용하시면 해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로부터 효율적인 도움을 제공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외교통상부 여행경보제도 안내 페이지(http://www.0404.go.kr/country/warningList.do?menuNo=1020000)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여행경보단계안내]
외교통상부에서는 해외여행, 체류시 특별한 주의가 요구되는 국가와 지역에 경보를 지정하여
위험수준과 이에 따른 안전대책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남색경보(여행유의 일부)/황색경보(여행자제 일부)/적색경보(철수권고 일부)/흑색경보(여행금지)
4단계로 구분하여 지속적으로 변경되고 있으니
출국 전 꼭 확인을 부탁드리며, 해외여행 등록제를 이용하시면 해외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로부터 효율적인 도움을 제공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외교통상부 여행경보제도 안내 페이지(http://www.0404.go.kr/country/warningList.do?menuNo=1020000)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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